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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법위반의 양벌규정과 행위자 특정의 문제

진앤리 법률칼럼 /김진영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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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주식회사)는 회사 명의로 된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으로, 냉·온수기를 포함한 건물의 재산관리에 관하여 B사(주식회사)와 도급 계약을 맺고 B사에 포괄적 위탁관리 업무를 맡겼다. 그런데 위 냉·온수기는 대기환경보전법 제2조 제11호에 따라 대기오염물질배출시설에 해당하였고, A사는 제39조 제1항에 의하여 반기마다 오염물질 농도를 자가측정하여 구청에 결과를 제출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측정 및 제출 업무를 담당한 B사의 귀책으로 제때 결과를 제출하지 못하였고 A사, B사 및 A사의 건물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C, B사의 담당자 D가 모두 피의자로 입건되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위 사례는 실제 벌어졌던 일을 좀 더 단순하게 각색한 것이다. 이 사건을 맡았을 때, 가장 처음 했던 생각은 이것이다. ‘법규위반 하나에 피의자가 왜 이렇게 많아?’. 자가측정 미이행에 따른 처벌규정은 동법 제90조 제4의3항이고, 여기엔 양벌규정인 제95조가 적용된다. 즉, 법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법인의 업무에 관하여 자가측정을 미이행하는 경우 행위자 외에 그 법인도 처벌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인’이 자가측정의 주체인 사업자 A사인 사실은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제95조의 ‘행위자’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B사, 직원 C, 담당자 D 모두 포함된다는 말인가.
보통 양벌규정에 의하여 ‘법인’이 처벌받는 경우 그 행위자는 문제가 된 업무를 담당한 ‘개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법인’과 ‘개인’, 이렇게 2명(?)의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위 사례의 도급 계약에 따르면, A사가 자가측정을 포함한 건물의 위탁관리를 맡긴 주체는 B사, 즉 ‘법인’이다. ‘법인’과 ‘법인’이 사업자와 행위자가 되는 독특한 경우인데, 경찰 입장에서 ‘아무리 ‘법인’에게 법인격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한 잘못인데 사람이 한 명도 처벌받지 않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판단한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면밀하게 따져보자. 통상 사업체의 규모, 위반행위의 성질 및 중요도, 별도의 실질적인 관리 책임자 지정 여부, 구체적인 업무분담 관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양벌규정상 행위자가 누구인지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특히나 위 사례와 같이 환경법규 준수와 관련된 사항을 전문업체에 위탁하여 위 업체에 상당한 자율, 판단 권한을 준 경우, A사의 직원에 불과한 C가 직접행위자인 B사의 자기책임을 배제시킬 만큼 행위지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D 또한 C와 같이 B사의 지시에 따르는 근무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D가 B사의 의사결정권한을 배제하고 자가측정에 관하여 독자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D에게도 행위지배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만일 경찰의 논리대로라면 C 뿐만 아니라 같은 부서 내 상급자도 처벌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C, D는 책임 내지는 처벌의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행위자’로 인정되지 않았고,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변호하는 내내 직원 C, D가 은연중에 드러내는 불안감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시키는대로 일하는 직장인인데 회사가 잘못했다는 이유로 피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위 사례는 행위자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의 대표나 직원도 양벌규정의 ‘행위자’로 보아야 하는지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이에 관한 논의가 풍성해져 무고한 사람들이 피의자로 입건되는 불행한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