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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유류분 제도' 위헌성 놓고 공개 변론

법률신문 /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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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속인 재산권 행사 소급 제한" VS "유족 생계 유지의 기초"

법정 상속인들에게 최소 상속분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유류분 제도를 놓고 그 위헌성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특히 민법상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규정된 현행 유류분 제도가 당초의 입법 목적을 충족시키고 있는지 등을 두고 팽팽한 법리 공방이 펼쳐졌다.
헌재는 17일 서울 종로구 재동 청사 대심판정에서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제1112조 내지 제1116조제1118조에 대한 위헌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2020헌바295·2021헌바72).
A 씨는 2007년 10월 며느리와 손자들에게 경기도 하남시의 전·임야 등 부동산을 증여한 뒤 10년이 지난 2017년 10월 사망했다. A 씨의 딸들은 2018년 2월 어머니에게 부동산을 증여받은 며느리와 손자들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이후 며느리와 손자들은 항소심 재판에서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제1114조 단서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를 기각하자, 2020년 5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2019년 5월 사망한 B 씨도 생전에 공익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재산을 재단에 유증했다. B 씨의 자녀들은 2020년 4월 재단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재단은 1심 재판에서 민법 제1112조 내지 제1118조 등에 대해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 기각되자 2021년 3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민법상 유류분 조항들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청구인들이 민법상 유류분 제도 전체의 위헌성을 함께 주장하고 있는 점, 다수의 사건이 병합되거나 병합될 예정인 점 등을 고려해 유류분 조항인 민법 제1112조~제1116조, 제1118조를 이번 사건의 심판대상 조항으로 삼았다.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유지와 상관없이 유산의 일정 부분을 유족들이 상속하도록 하고, 특정 상속인이나 제3자에게 유산이 몰리는 것을 방지해 유족들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9년 1월부터 시행됐다. 민법 제1112조에선 상속인의 유류분을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등으로 정하고 있다.
청구인 측은 "유류분 제도의 입법목적은 △유족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 형성의 기여에 대한 보상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보장인데, 시대의 변화와 핵가족화, 여성 지위의 향상, 남녀평등 실현 등에 따라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며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는 상속권에 우선하는데, 유류분 제도는 상속개시 당시 남아있는 잔여 재산만 상속의 대상이 된다는 상속 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류분 제도는 당사자 사이의 형평과 상속 재산에 대한 기여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획일적·일률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정해 매우 불합리하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두지 않아 패륜적 상속인에게도 유류분반환 청구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 등과 같은 공익적 증여까지 유류분반환 청구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동상속인에 대한 특별수익으로서 증여의 경우 민법 제1114조의 적용을 배제해 시기의 제한 없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 재산에 산입함으로써 유류분반환 청구의 대상을 크게 확대해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유류분 제도로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은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반면 일률적인 유류분으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류분 제도는 유족의 생존권 보호라든지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내지 기대라고 하는 상당히 불명확하고 전근대적으로 보이는 목적을 위해 피상속인의 재산권 행사를 소급적으로 제한하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해관계기관(법무부장관) 측은 "시대의 변화에 맞도록 유류분 제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도 인정되지만, 제도 개정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항"이라며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피상속인의 사망 후에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을 확보해 유족들의 생계의 기초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또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하지는 않고, 부양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상속인도 상속재산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며 "유류분의 범위가 법정상속분의 일부로 제한되고 있는 점, 일률적 유류분 보장은 기여분이나 신의성실의 원칙 등을 적용해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침해의 최소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구인의 재산권이라는 제한되는 사익이 유류분 제도로 인해 달성되는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와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보상이라는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 볼 수 없어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한다"며 "피상속인으로부터 특별수익으로 증여를 받은 공동상속인의 경우 증여 시기를 불문하고 모든 증여가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산입되는데, 이는 공동상속인간 공평을 기하기 위해 그 수증재산을 상속분의 선급으로 다뤄 구체적인 상속분이나 유류분을 산정함에 있어 이를 참작하도록 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고, 그 필요성과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 여부를 놓고 로스쿨 교수들의 의견도 갈렸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온 현소혜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유류분 제도의 입법목적상 정당성은 여전히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현행 민법상 유류분 제도는 지나치게 경직되고 유류분 반환 의무의 범위도 지나치게 넓어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와 수증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했다.
반면 서종희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이해관계기관(법무부장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해 "입법 당시의 취지가 약해지거나 퇴색됐을지라도 여전히 존재 의의가 있고, 개정의 필요성이 곧바로 해당 조항의 위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비교법적으로도 유류분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유류분 제도는 헌법 제23조 제1항 전문과 제37조 제2항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했다.
헌재는 이날 논의된 청구인 측 대리인, 법무부, 참고인들 진술을 종합해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조항들에 대한 위헌성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이용경 기자 yklee@lawtimes.co.kr